우리가 물려받고 싶은 나라

우리가 물려받고 싶은 나라
한겨레

3일 밤늦은 시각,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배경으로는 김건희 여사 특검(특별검사) 문제와 명태균 공천 개입 수사, 10%대인 낮은 지지율, 민주당이 형성한 탄핵 정국이 꼽히는데, 이렇듯 어려운 국면을 단숨에 반전시켜 보고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이 여러 인사들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것과 정부 예산안을 삭감한 것에 대해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라며 민주당을 “종북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하고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이라는 등 각종 저급한 어휘를 사용하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 선포라는 막중한 사안을 본인의 최측근, 일명 ‘충암파’들과만 의논했다고 전해진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계엄 선포 사실을 2시간 전에야 알았다고 한다. 지난 1987년 민주화 이래 단 한 번도 실행된 적 없던 계엄 선포를 국무총리도 건너뛴 채로 윤 대통령의 최측근 몇 명과만 의논하고 실행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계엄 선포 2시간 전 이뤄진 국무회의(대통령 이하 장관들이 모두 모인 회의)에서 대부분의 장관이 극렬히 반대했는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본인의 뜻을 밀어붙였다.

비상계엄 선포 절차에도 문제가 있다. 헌법 제77조 1항에는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계엄을 선포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계엄이 선포되면 언론·집회·결사·출판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이 크게 제한되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에는 행정권과 사법권이 부여된다. 특정 범죄에 대한 재판은 군사법원에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렇듯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헌법은 정말 필요한 상황에만 계엄을 선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과 영부인이 정치적 위기에 처했고, 야당이 대통령 부부와 측근에 대한 공세를 펼치고 있는 현 상황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해당하는지는 의문이다. 사회적으로 혼란이 발생하지도 않았고, 북한이 침입하려는 낌새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데, 성급히 본인의 정치적 생명만을 위해서 민주적으로 작동하는 국회를 “종북 반국가 세력”, “패악질을 일삼는 망국의 원흉”이라 칭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계엄을 선포한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 뒤 계엄사령부는 포고령을 발표했다. 포고령에는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헌법에 어긋나는 조치이다. 헌법에는 계엄 상황에서 정치활동을 제한할 수 있다는 조항이 없다. 오히려 헌법에는 국회는 계엄의 해제를 요구할 수 있고, 계엄 시행 중 국회의원은 체포 및 구금을 당하지 않는다고 규정되어 있다. 3일 계엄령 선포 직후 계엄사령부는 군경을 동원해 국회 출입을 막고 본회의장에 침입하려고 시도했다. 이런 일들도 모두 헌법을 위반한 것이다.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은 4일 오후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의 회동에서 국회의원 체포에 대해 “계엄군이 그랬다면 ‘정치활동 금지’를 명기한 포고령 위반이니 체포하려 한 것 아니었겠느냐”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지는데, 초헌법적 발상이다. 아무리 국가적 비상사태에 의해 선포된 계엄이라고 해도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출입하는 걸 막고 국회의원을 체포하면 안 된다. 국회의원의 활동을 방해하는 것은 내란죄에 해당하여 탄핵은 물론 최대 사형까지 처해질 수 있다.

다행히 4일 새벽 1시, 국회의원들이 빠르게 집결해 계엄 해제 요구안을 통과시키고 대통령에게 통고하면서 계엄은 4일 4시 30분부로 해제되었다. 국회 본회의가 조금만 늦었다면 계엄군이 국회를 해산시키거나 국회의원들을 체포했을 것이고, 계엄 또한 해제되지 못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한목소리로 계엄을 비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통령이 국민을 배반했다”며 “이 순간부로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주장했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계엄은 위법·위헌”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도 “비상계엄 선포는 비정상적”이라며 “대한민국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고, 실제로 더불어민주당과 개혁신당 등 6개 야당에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은 5일 0시 국회 본회의를 열어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보고했다. 탄핵소추안 보고 24시간 후 의결해야 하므로 7일(토요일)에 탄핵소추안이 의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의원 3분의 2인 200명의 동의를 얻어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는 즉시 정지된다.

대한민국의 외교적 타격도 불가피하다. 현재 한미 동맹은 “민주주의 수호”를 목표로 하는데, 계엄령이라는 군부독재를 연상케 하는 조치로 한미 동맹이 위태롭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총리와 스웨덴 총리의 방한이 연기됐고, 미국과 진행할 예정이었던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도 무기한 연기됐다. 현재 미국은 정권교체 시기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집권 직후 무거운 관세를 매기고 보호무역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측되는 등 이번 정권교체가 우리나라에 미치게 될 영향이 막대하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일로 인해 탄핵당하거나 하야할 경우 중요한 시기 대미 외교의 사령탑이 사라지는 셈이므로 많은 수출기업들이 현 사태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겨레

현 상황은 가히 민주주의의 실종이라 평가할 만하다. 윤석열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목적만을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계엄을 선포했고, 민주적으로 일하는 야당을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세력”이라고 싸잡아 비난했다. 계엄사령부가 계엄 선포 직후 발표한 포고령에는 국회의원의 활동을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됐고, 이는 헌법을 위반한 조치이다. 비상계엄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엄청난 외교적 손해를 입었다. 트럼프 행정부 집권에 대비해야 할 중요한 시기인데도 무역의 사령탑이자 경제의 사령탑인 대통령의 궐위가 예상된다. 일개 중학생이 봐도 개탄스럽고 한심한 일이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국가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군부독재 시절에나 나올 법한 생각을 하고, 또 그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대통령과 국방장관 등 이 사태를 초래한 사람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제와 교육, 의료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민주화 이래로 유례가 없던 반민주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정치에 몸담은 사람들은 국가를 최대한 빠르게 정상화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하야도 괜찮고, 탄핵도 상관없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러한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단호히 조처해야 한다. 미래 세대는 이러한 일을 겪지 말아야 한다.

우리 청소년은 민주주의가 사라진 나라, 경제가 망한 나라, 국제적으로 망신만 되는 나라를 물려받고 싶지 않다.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우리는 원한다. 정부와 국회는 대통령과 내각의 거취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하며, 우리나라가 하루빨리 정상화될 수 있게 함께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물려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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