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파면, "민주주의의 역사로 남았다"

헌법재판소가 4월 4일 재판관 8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주문(재판의 결론)을 읽은 오전 11시 22분, 대통령직을 잃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렇게 4월 4일 대통령직에서 완전히 파면됐다. 2022년 5월 10일 취임 이후 1060일 만,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후로부터는 123일 만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에 이어 대한민국 헌정사 두번째로 대통령 파면이라는 역사가 남게 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비상계엄 선포 △포고령 1호 발령 △군경을 동원한 국회 봉쇄와 침입 시도 △중앙선관위 장악 시도 △법조인 체포 지시의 다섯 가지 탄핵 사유 모두를 인정했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여 계엄을 선포함으로써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해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했다”, “대통령의 위헌·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 “대통령의 법 위반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하므로, 그를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며 탄핵을 인용했다.
판결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은 “그동안 대한민국을 위해 일할 수 있어서 큰 영광이었다”며 “많이 부족한 저를 지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국민께 깊이 감사드린다”는 입장을 냈다. 또 윤 전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고 죄송하다”, “대한민국과 국민 여러분을 위해 늘 기도하겠다”라고 변호인단을 통해 전하며 국민의힘 인사들에게는 대선 승리를 당부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탄핵 선고가 내려진 직후 "인용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탄핵 인용 소식은 둔기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국민의 반응은 엇갈렸다. 탄핵 찬성 집회에서는 탄핵이 선고되는 순간 모두가 환호하며,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질풍가도', '다시 만난 세계' 등 희망찬 대중가요들을 함께 부르며 축제 분위기를 누렸다.
그러나 같은 시각 탄핵 반대 집회에서는 분노와 오열이 터져나왔다. 판결 직후 침울한 분위기가 된 집회에는 헌법재판소를 비난하는 사람과 판결에 승복하는 사람들이 공존했다. 지지자 중 한 명이 화를 참지 못하고 곤봉으로 경찰 버스 창문을 부수다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몇몇 지지자들이 실신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교육청의 권고에 따라 당일 서울 대부분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민주주의 교육의 일환으로 수업 시간에 헌법재판소의 판결 과정을 학생들에게 보도록 했다.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전문이 끝나자 대부분의 학생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외신들도 이를 속보로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비상계엄 선포로 민주주의를 혼란에 빠뜨린 대통령을 향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결과 탄핵안이 가결됐다. 시민들로 가득 찬 거리가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라고 보도했으며, CNN은 “안정적인 민주주의 국가에 계엄을 선포한 것은 도박이었고,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큰 역효과를 낳았다”며 “국민들이 계엄령을 선포한 이유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 사건이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했지만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지킨 사건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다”고 보도했다.
우리가 비상계엄 선포와 이에 따른 탄핵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은 각자 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은 그날 분명히 보았다. 국민에게 전혀 설명하지 않은 채로 비상계엄이 갑작스럽게 선포되자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이 맨 몸으로 장갑차를 저지하는 것을, 군인들이 부당한 명령에 불복하며 태업하는 것을, 국회의원들이 급히 담을 넘어가 결국 계엄을 해제해낸 것을. 많은 시민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며 이 모든 과정을 확인하고서야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기말고사 기간에 시작된 혼란은 다음 해 중간고사 기간이 되어서야 마침내 끝이 보이게 되었다. 헌법재판소는 반헌법적 계엄 선포의 책임을 물어 대통령을 파면했고, 이 과정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