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호 편집장 [경향신문]
작년은 정말 굉장했다. 굉장했다는 말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토끼풀>을 창간했다. 은평구 3개 학교에 진출해서 은평구, 더 나아가 서울 최고의 청소년 신문으로 만들었다. 국회의원 여러 분과 시의원 한 분을 만났고, 은평구 최고의 지역신문과도 협력하는 관계를 구축했다. 청소년 교통비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김서영 기자가 쓴 교통비 문제 관련 글이 <한겨레>에 실리기도 했다. 인생 처음으로 메이저 일간지 <경향신문>과 인터뷰해 기사가 실렸고, EBS 뉴스 스튜디오에도 출연했다. 이런 많고도 대단한 일들이 2024년 한 해 동안 이루어졌다니 정말 꿈만 같다.
<토끼풀>의 존재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우리 주변의 문제들을 알리고 해결할 수단과 청소년들을 대변할 매체가 필요하다. 청소년은 필연적으로 약자이다. 까딱 잘못하면 대학 입시가 날아가고 인생이 족쳐질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이런 청소년을 대변할 단체는 없는 게 현실이다. 교사도 집단이 있고, 학부모도 집단이 있어 단체로 행동한다. 하다못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이 없다고 평가받는 장애인들도 단체가 있다. 이런 청소년을 대변한다는 사람들은 ‘인권운동가’ 내지 ‘청소년 권리 활동가’라는 직책을 달고 활동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주로 어른이다. 어른들이 청소년의 권리를 보장해 주고, 인권을 지켜준다니. 말도 안 된다. 우리의 권리는 우리가 찾는다.
사실 처음 <토끼풀>을 창간할 때는 이런 생각이 없었다. 그냥 우리 주변의 문제를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토끼풀> 일을 하다 보니 든 생각이다. 청소년은 기후동행카드나 K패스 등 많은 정책에서 소외돼 있고, 투표권도 없어 정치인들에게 이런 정책을 만들어 달라고 할 힘도 없다. 설상가상으로 많은 어른들은 이렇게 청소년을 위한 정책을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청소년에게 “학생의 본분은 공부이다”라는 말을 내세우며 무시한다.
이번에 발행한 비상계엄 관련 호외에 대한 반응도 그렇다. 물론 기특하다며 칭찬해 주시는 분들이 훨씬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 심리상 좋은 반응보다는 나쁜 반응들이 눈에 더 크게 들어온다. 우리 사회와 민주주의는 대중의 관심을 바탕으로 돌아간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권력이 부패하지 않고, 언론이 제대로 작동해야 권력이 탈선하지 않는다. 청소년들도 엄연한 사회 구성원이고 국민인데, 나라 돌아가는 일에 관심 갖지 말라는 건 얼토당토않은 소리다. 지금 관심이 없으면 앞으로도 관심 없을 확률이 높다. 평생 나라 돌아가는 일에는 관심 갖지 말라는 건가. 그러면 일부 기득권층이 국가를 마음대로 쥐고 흔들텐데.
지난 2024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연초 <토끼풀>의 창간부터 연말 초유의 비상계엄 사태까지. 새로 맞이하는 2025년에는 청소년이 이렇게 목소리 낼 일이 많이 없었으면 좋겠다. 타락한 권력과 썩은 기득권이 설치는 대한민국은 지금도, 미래도 되지 않았으면 한다. 청소년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그러나 사회에 관심은 계속 가질 수 있는 그러한 우리나라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