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괴담이나 전설, 신화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과학을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이런 분야들에 관심이 꽤 있습니다. 단순한 흥밋거리로도 좋아하지만, 과학의 눈으로 기이한 이야기를 뜯어보면 더욱 다양한 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과학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뜯어본다면 기존의 해석과 다른 새로운 해석이 가능합니다. 오늘은 과학으로 바라본 흥미로운 일본 요괴 이야기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시라누이는 일본 규슈 지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신비한 자연 현상으로, 여름 밤 바다에 나타나는 정체불명의 불빛입니다. 처음에는 한두 개의 불빛이 보이다가 점점 늘어나 수평선을 가득 채울 만큼 커지는 모습이 특징입니다. 이 불빛은 바다로부터 약 4~8km 떨어진 거리에서 관측되며, 특히 해안가로 물이 들어오는 썰물 때에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고 전해집니다. 한국의 ‘도깨비불’과 비슷한 현상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옛날 일본 사람들은 시라누이를 초자연적인 존재로 해석했습니다. 이무기나 용이 승천하는 징조라고 생각하거나, 바다의 신이 배를 인도하는 표시라고 믿기도 했습니다. 과연 현대 과학이 밝혀낸 시라누이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요?
현대 과학은 시라누이를 ‘신기루’ 현상으로 설명합니다. 신기루는 빛의 굴절로 인해 멀리 있는 물체가 실제보다 왜곡되거나 확대되어 보이는 자연 현상입니다. 시라누이가 주로 여름철에 나타나는 이유도 여름이 바닷물의 온도가 가장 높은 시기라는 점과 관련이 있습니다.
규슈 앞바다에서는 썰물 때 넓은 갯벌이 드러나면서 바닷물과 갯벌의 온도 차이가 크게 발생합니다. 이러한 온도 차이는 공기의 밀도 차이를 만들고, 이는 빛을 강하게 굴절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어선에서 나온 불빛이 이런 환경에서 굴절되면, 마치 바다 위를 떠다니는 거대한 불빛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결국 시라누이의 정체는 초자연적인 도깨비불이 아니라 특정 환경에서 발생한 빛의 굴절 현상인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최근에는 갯벌 매립과 해안 마을에서의 인공 불빛 증가로 인해 시라누이를 관찰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시라누이가 자연 현상임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증거입니다.
바케쿠지라는 일본 시마네현 북동부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속 요괴로, 뼈만 남은 고래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바케쿠지라와 관련된 이야기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뼈만 남은 고래 괴물이 바다에 나타난다. △괴물 주위에는 물고기나 새들이 모여든다. △괴물이 인간과 마주친 후, 전염병이 퍼져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과연 바케쿠지라는 정말로 역병을 퍼뜨리는 무서운 요괴일까요?
과학적으로 해석하면, 바케쿠지라의 정체는 ‘부패한 고래 사체’입니다. 고래가 죽어 부패하면, 몸 내부에 가스가 차오르면서 부풀어 올라 매우 기괴한 모습이 됩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 모습을 충분히 괴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부패한 고래의 사체는 새와 물고기를 끌어들이기 마련입니다. 고래 사체를 뜯어먹으려는 동물들이 몰려드는 현상이 전설 속에서 ‘괴물 주변에 모여드는 물고기와 새들’로 표현된 것입니다. 실제로 고래 사체는 바닷속에서 해양 생물들에게 중요한 먹이가 됩니다.
전염병과 관련된 이야기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부패한 고래의 사체에서는 다양한 병균이 번식하며, 이로 인해 인간들에게 전염병이 퍼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설 속 바케쿠지라가 전염병의 원인으로 묘사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시라누이와 바케쿠지라의 이야기는 단순한 전설이라기보다, 자연 현상과 인간의 상상이 결합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다를 뒤덮는 불빛, 부패한 고래 사체의 기괴한 모습과 그로 인해 발생한 전염병이 옛 사람들에게 공포로 다가왔고, 이는 곧 요괴로 해석되었던 것입니다. 자연 현상을 요괴로 해석한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와 함께 우리는 자연을 이해하는 과학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낄 수도 있습니다. 과학을 따분하고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고 이처럼 세상을 보는 새로운 창으로 여기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칩니다.